내면의 평화 이너피스(inner peace)
지금 자기관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제게 묻는다면 저는 건강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저는 자기관리의 기준을 '미'에 두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한창 중요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피부가 좋았으면 해서 피부를 가꾸는 데에 돈과 시간을 들였고 몸매가 날씬했으면 해서 살을 빼는 데에 돈과 시간을 들였습니다. 물론 실패로 끝났지만요. 이렇게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들을 경험하다 보니, 외면보다는 내면이 중요하단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다이어트에 실패했다고 해서 합리화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면의 모습이었어요. 이 내면을 단단히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은 내면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속이 건강해야 하는데요. 최근 이 방법을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요가인데요, 요가는 근력을 쓰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더 끌렸던 이유는 바로, '명상'.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이유가 제겐 매력적이었습니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로부터 온다고 하지요. 살아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경쟁 시대이며 눈이 떠지는 순간이 전쟁같은, 숨만 쉬어도 돈이나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입니다. 게다가 저는 내향적이기도, 외향적이기도 한 복잡한 성격에 때론 예민하기도, 호불호가 강하기도 하며 몸 안의 '화'가 느껴질 만큼 분노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지 한 때 '분노 방'이라는 곳이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분노 방은 물건이 있는 방 안에서 마음껏 물건을 던지고 부시고 때리는 행위를 통해 마음속의 '화'를 푸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화를 몸 안에 쌓아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니요, 주변에 분노 방이 있다고 생각해 보니 세상이 그리 밝게 그려지진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천천히 요가를 통해 명상하며 어지러운 감정을 호흡을 통해 다스리고 나를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준다면 더이상 몸속에 '화'를 쌓아두지 않고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명상과 함께하는 운동, 정말 제 취향인 것 같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요? 숨쉬기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이렇게 저의 취향은 더욱 고요하고 적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 혹시 불멍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불멍은 장작불을 보며 멍을 때린다는 신조어라고 합니다. 타닥타닥 백색소음을 내며 타는 장작을 보면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리게 됩니다. 불을 보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중 헤스티아(Hestia)가 생각납니다. 헤스티아는 불과 화로의 여신으로, 올림포스 신전에서 화로 앞에 앉아 불을 지킵니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인지 머릿속에 바로 그려질 것입니다. 이처럼 저도 겨울이면 헤스티아처럼 외할머니댁의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장작을 집어 넣었습니다. 아, 장작 옆 고구마는 조심해 주세요. 제거니까요. 온갖 걱정들을 같이 태워버린 듯이 그 순간에는 잡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혹시 헤스티아도 불멍을 즐겼던 건 아닐까요? 어쩌면 불멍은 뇌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개인 작업을 합니다. 집에서는 요즘 흔들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귤을 까먹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건 쉬는 게 아니었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뇌는 열심히 나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정보를 처리하는 중이었음을요. 1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야 뇌가 쉴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뇌가 쉬어야 할 시간에 밤새 교수님이 주신 과제를 하고, 과제에 지친 삶에 낙을 주기 위하여 과제가 끝나면 예능을 보고, 예능을 다 보고 나면 현타가 와 내일을 걱정하고, 곧 졸업인데 무엇을 할지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무심하게도 이 세상은 뇌가 쉴 틈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로또 1등에 3번 정도 당첨이 되어야 그나마 제대로 쉴 것 같은걸요. 제 인생에 스물네 번째 겨울, 타작이 끝난 참깨 묶음을 밭 한가운데에 모아 그것을 태울 때, 뇌는 제 눈을 통해 본 불의 모습이, 귀를 통해 들은 깨 껍데기 터지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의 취향은 더욱더 자연(自然)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자신과 가족들 이외에 딱히 믿는 무언가는 없습니다. 최근 학교를 졸업한 저에게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 힘든 일, 나쁜 일, 울적한 일, 속상한 일. 대부분 지치는 일들이 많아 기분전환을 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이 기계적인 삶을 떠나 일주일만이라도, 아니 이틀만이라도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졌습니다. 누구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믿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지쳐, 가끔 나를 잃어버리다 보니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들을 계속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방법을 찾던 중 머릿속에 ‘템플스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템플스테이는 불교 문화지만 최근 젊은 사람들,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서로 비슷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쉼표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 전통’이라면 의복, 건축, 공예, 도예, 음식 등 모든 것에 마음이 가는 편이라 가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절이 나올 때면 채널을 멈춥니다. 그것을 보며,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과 편안함, 목탁 소리, 풍경 소리 등에 빠져들곤 합니다. 무언가가 이뤄지길 기원하거나,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무언가를 찾고자 하거나. 절을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 마음속으로만 가고 싶다, 가고 싶다. 되뇌일 뿐입니다. 나중에 좀 더 ‘절’이라는 곳이 궁금해질 때 가보려 합니다. 지금은 그 영향을 받아 나만의 템플스테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무계획을 계획으로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건강해지러요. 더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잘 구슬렸다가 보내려 합니다. 참으면 병이 되어버리니까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방법을 더 수련하려 합니다. 그럼,
글 디자이너 M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