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消女(사라진소녀)
네가 도망친 지 열흘이 지났어. 너와 달리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어. 이제 더이상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저번 달 새벽에 도망치려다 박힌 유리 조각 탓인 것 같아. 그래도 네가 구하러 오겠다고 했으니까 참을 만해. 이곳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줄어들고, 버팀목이었던 네가 내 곁에 없지만, 나는 괜찮아.
네가 떠난 뒤로 아저씨는 티브이를 보게 했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 한다면서 말이야. 온종일 사건사고를 모아놓은 영상을 보고 있어. 오전에 본 건 어떤 바이러스에 대한 거였어.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일인데 감염되면 눈이 멀어버린대. 그 바이러스 때문에 마을은 격리됐고 군인들은 마을을 둘러싼 채 총을 장전하고 있대. 혹여나 사람들이 마을 밖으로 나오면 바이러스가 확산될까 봐 죽일 심산인 것 같아.
뉴스 앵커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어. 그런데 안타까운 감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현재 너머의 일은 본인의 일이 아니라는 걸 자각한 사람들만의 감정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깨달았어. 수없이 많은 사건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안타까움이 아니라 분노였어. 이곳에 갇힌 채 살아가는 나만큼 불쌍한 사람은 누구인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결국 이곳에 갇혀 죽게 될 나를 나만이 동정할 수 있는 이 상황에 화가 났어.
긴 영상이 끝나고 나는 한참 어둠 속을 헤맸어. 저녁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 지하실에 들리는 아저씨 때문에 항상 이러는데도 적응이 안 돼. 그래도 네가 만들어준 인형이 있으니 괜찮아. 사실 네가 도망친 후에 나도 한 번 도망쳤었어. 움직이지 않는 한쪽 다리 탓에 금방 잡혔지만 말이야. 질질 끌려오면서 생각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너였어. 너였다면 아마 아저씨에게 붙잡히기 전에 도망쳤겠지.
우리가 이곳에 온 날, 비가 멈출 기세도 없이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어서 엄청 뛰었던 게 생각난다. 그때 차를 탄 아저씨가 우리 앞에 섰잖아. 비가 너무 많이 오니까 감기 걸릴 수도 있다고,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었지. 그때 우리가 우산이 있었더라면, 너와 나의 부모님이 데려왔더라면 우린 이곳에 갇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아저씨는 여전해. 하루에 두 번씩 지하실에 들러 음식을 줘. 그리고 유에스비에 담아온 사건사고들이 가득한 영상들을 재생시키고 한참을 함께 보다가 순간 나를 빤히 쳐다봐. 이곳에 와서 제일 무서울 때가 언제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아저씨가 빤히 쳐다볼 때가 가장 무섭다고 말할 거야. 아마 가져다준 음식을 다 먹지 않아서인 것 같아. 아저씨는 여전히 “오늘은 입맛이 없어서” 같은 말들을 용납하지 않아. 그릇을 비울 때까지 아저씨의 눈빛을 감당해야 해. 결국 다 해치우고는 그릇을 내려놓으니 아저씨가 처음으로 네가 먹는 게 뭔지 궁금하지 않냐 물었어.
쌀이나 야채처럼 온전한 식량이 아니었으니까, 항상 고기였지만 어떤 고기인지는 몰랐으니까,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겁이 났지만 그래도 궁금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어. 아저씨는 막 웃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바깥으로 나갔어.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을까?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아저씨가 걸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어. 무언가 질질 끌고 내려와서는 멀찍이 서서 내 앞에 무언가 툭 하고 던졌어. 너는 아저씨가 가져온 게 뭐였을 거라고 생각해?
삶은 항상 잔혹하지만, 잔혹함에는 한계가 없어서 매 순간 두려워. 아저씨가 가져온 걸 본 순간 처음으로 너처럼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이곳에서 나가 너와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가차 없이 사라져버렸어. 이곳에는 너와 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사실 우리는 그나마 나은 생활이었다는 걸, 던져진 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아이의 몸이었다는 걸, 나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야. 도망간 너는 행복해? 네가 잘 도망쳤다면 이제 날 구하러 오겠단 약속을 지켜줘.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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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일 년 전, 안산 고교생 실종사건의 범인인 김모씨가 강 모양의 극적인 탈출로 덜미를 잡혀 긴급체포됐습니다. 안산 △△경찰서는 아직 탈출하지 못한 박 모양을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강 모양의 진술로 김모씨의 잔혹한 인권 유린 행위가 밝혀져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여론은 김 모씨가 납치, 살인 등 수많은 범행을 저질렀기에 그에 상응하는 높은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추세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김모씨의 신상 정보가 삽시간에 퍼져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올랐습니다. 한 인권 단체는 인권은 어떠한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범죄자라 할지라도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신상 정보 최초 유포자를 고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속보를 마치면서, 박 모양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끝.
글 에디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