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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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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라는 말이 너무 싫었다. 사랑한다는 말로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 특히 가정폭력, 아동학대의 경우에는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자신을 덜 사랑하는 쪽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덜 사랑하는 쪽이 자신을 버리면 생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평생 자신을 덜 사랑하는 부모에게 아등바등하는 삶을 사는 거다.

결핍.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핍은 사람을 노력하게 만든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버텨내고, 사랑한다는 말에 목숨을 내어주고, 나를 다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언젠가 돌아보게 되면 그 때야 알게 된다. 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고 폭력이고 억압이었다는 것을.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진짜’ 사랑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꼭 전하고 싶은 말이었다. 사랑은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래서 마리몬드 동반자 공모전에 ‘아동학대’ 부문에서 저 문장을 제목으로 소설을 썼다. 자리에 앉자마자 단숨에 쓴 그 글을 퇴고 한 번 없이 제출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전해진다면 수상할 지도 몰라, 생각했는데 은상을 받았다. 소설의 내용은 아주 오랜 시간 학대를 견뎌온 A를 바라보는 B에 대한 것이었다.

*

A는 무척 잘 웃는 아이였다. 종종 몸에 상처가 생겼지만 워낙 활달한 아이였으므로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A의 부모님은 무척 덕망이 높은 사람들로 평판이 좋았다. 다들 이상적인 가정이라며 부러움을 보냈다. B는 A를 볼 때마다 무척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또래보다 침착하고, 외향적인 그 아이처럼 되고 싶었다. 어느 날 우연히 A의 목에서 손자국을 발견했을 때에도 B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B가 생각하는 일들이 쉽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가족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참다못한 A가 B의 집 앞으로 찾아왔을 때, 그제야 B는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닫는다.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하고 끔찍한 것이었는지도.

A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A는 자라면서 내내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으로 멍을 감추는 날도 늘었다. 이렇게 예쁘고 바른 아이를 대체 왜? B는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유따위는 없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자마자 A는 도망치듯 집을 벗어났고, B는 그를 따랐다. 서류상 보호자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거부당했을 때도, 험한 욕이 가득한 연락을 주기적으로 받으면서도 A는 울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A와 B는 조금 나은 삶을 살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떨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설거지와 빨래 같은 집안일을 나누는 일로 다투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은 해야 했지만 월세를 제때 내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작은 1.5룸이 그들에게는 천국이었다. 틈틈이 보증금을 위한 적금을 넣고, 가끔씩 치킨과 떡볶이를 같이 시켜먹는 그 삶이 무척 좋았다.

어느 새벽, A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A는 한참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끝내고 A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난히 새까만 밤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이 딱 하나 있었다. B는 무슨 전화냐고 묻지 않았다. 전화기 틈새로 “미안하다….” 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A는 그때도 울지 않았다. B는 A를 조용히 껴안았다. B는 그제야 알았다. A는 여태까지 울지 않았던 게 아니라, 더 이상 울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B는 울음을 터뜨렸다. 겨우 미안하다는 말로 죗값을 치루려는 그들이 미웠고, A를 울지도 못하게 만든 이 삶이 처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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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특히나 부모라는 건. 부모가 아이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되었든 결과적으로는 한 사람의 ‘세계’를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할 ‘의무’를 가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그 아이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온 마을의 관심과 사랑으로 자라났으므로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유산을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런 의무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생각보다 빈번하다는 건, 무척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유년기의 상처는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아동발달이론에 따르면 유아기와 유년기에 벌어진 사건이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학대는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곽덕순(고두심) 할머니가 필구(김강훈)에게 말실수를 한 장면이 있다. 이를 동백(공효진)이가 알게 됐는데 그때 대화가 참 인상 깊었다. 곽덕순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애니께 얼렁, 좀, 까먹어주겠지 금방 잊어버릴겨. 내가 금방 까먹게 더 잘 해줄게” 그러자 동백이가 대답한다.

동네 아줌마들이 일곱 살 계집애한테 제 엄마 혹이라고 했던 거 저 아직도 기억해요.

때로는 사람들이 폭력을, 학대를 ‘체벌’의 개념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아이를 어른스럽게 만드는 것, 빠르게 철 들게 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야만 한다. 예의가 없는 아이로 키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아이가 알 필요 없는 세상의 지식과, 가정의 이야기들을 주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온 마을의 어른들은 입 조심, 행동 조심을 해야만 한다. 아이는 사랑을 받기만 해도 모자란 소중한 존재니까. 그들이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인도하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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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A에게, A는 B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소처럼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전셋집으로 이사 갈 방도를 궁리한다. 다만 B는 마음속에 소원을 하나 품는다. 다음 생이 있다면 A가 자신의 딸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것이다. A의 부모가 된다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사랑을 주겠다고,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우는 삶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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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진 않았지만 내 소설의 결말은 이렇다. A와 B는 남들처럼 산다. A와 B는 언젠가는 싸워서 영영 연락 없이 살았을 수도 있고, 혹은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지냈을 수도 있다.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했거나, 병에 걸려 죽거나, 혹은 로또에 당첨됐거나. 그냥 남들처럼 산다. 그렇지만 다음 생에 A는 B의 딸로 태어난다. A는 가끔 사고도 치고, 따끔하게 혼나기도 한다. A 몸에 생채기가 날 때마다 B는 억장이 무너지고, A의 결혼식을 보며 B는 엉엉 울고 만다. A는 그런 B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삶을 산다. 세상에 더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로 그들은 그렇게 산다.

A와 B는 서로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A는 늘 곁에 있는 B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B는 A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A의 마음도 B의 생각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아주 멀리서 그들이 살아내는 걸 지켜보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받아 적기만 했다. 그들의 삶이 관계가 묘하게 느껴졌다. 다만 나는 쓰면서 바랐다. 고통스러운 삶이었겠지만 반드시 행복해지기를. 그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지기를.

글  에디터 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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