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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만나요.

여러분 혹시 이런 신입사원 모집 광고를 보신 적 있나요? 경력도 학력도 나이도 상관없고 급여는 월 300만원 이상이라니. 심지어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는 이 광고. 뭔가 이상하지만 그래도 관심이 갑니다. 상세요강을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지죠. QR코드를 찍으면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4학년 엄규성(24)씨의 광고

1930년 그들도 속았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 광고는 사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광고였습니다. 취업 사기부터 납치, 협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할머니들은 배를 타고 먼 나라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 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까요.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과 한 마디 없는 일본. 인권에 대해서 다루는 지금,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있나요? 여러 가지 명칭이 있지만 정식명칭은 일본군‘위안부’입니다. 일본군이 사용했던 위안부라는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따옴표를 반드시 붙여 써야 합니다.

언젠가는 이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맘을 항상 품어 왔습니다.

TV에서 일장기만 보아도 울렁거리고

정신대 정자만 들어도 숨이 콱 막혀서 꼭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은 피맺힌 한을 풀지 못해서입니다.

내 청춘을 돌려주십시오.

 

故김학순 할머니(1924~1997)

1990년 일본정부는 ‘위안부’ 사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보고 1991년 8월 14일, 故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위안부’ 국내거주 첫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많은 할머니들은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숨겨왔습니다. 사회적 상황과 주변의 시선들이 곱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용기 있는 발언은 다른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끌어냈고, 수요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992년 1월 8일에 시작된 수요 집회는 2020년 1월 31일 기준으로 1424차 집회를 마쳤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습니다. 함께했던 240여명의 할머니들 중 이제 단 19분만이 살아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룬 이야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정의기억연대 http://womenandwar.net/kr/

일본은 우리 할머니들이 돈 한 푼이면, 얼마 던져주면 될 줄 알아도, 천만에!

우리 할머니들이 이렇게 비록 나이가 많아도, 이리 아파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죽고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라도 일본 정부하고 싸울 테니까.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 거예요.

독해졌어요. 갈수록 더할 거예요. 일본이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를.

 

故강덕경 할머니 (1929~1997)

[전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마포역에서 조금 걷다가, 어느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곳. 바로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입니다. 주택가에 웬 박물관이 있을까요? 원래는 서울시의 도움으로 서대문 독립공원에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일부 단체들의 항의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서 2012년 5월 5일, 이곳에나마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들어가서 입장료를 결제하고 오디오 가이드를 받았습니다. 입구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데요, 저는 故강덕경 할머니의 이야기가 적힌 티켓을 받았습니다.

이 박물관의 동선은 굉장히 독특한 구성입니다. 1층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2층으로, 다시 1층과 지하 기획전시관으로 이동하며 관람하게 되어있습니다. 1층에서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은 나비 인터렉티브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따라 외부로 이동하면 어디선가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를 들으며 외부 전시를 관람하고 지하로 내려가면 어쩐지 숨이 턱 막힙니다. 얼마나 참혹했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잔인했는지 그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부터 세상의 편견과 싸우며 견딘 세월까지, 자세하게 읽다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나보다도 어린 소녀들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 박물관에서 봐야할 것은 비단 일본군‘위안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故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이론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으면 그 돈을 세계 전쟁피해 여성을 돕는 데 쓰겠다며 ‘나비 기금’을 제정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워진 이 전시관 역시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어린 아이들. 무참히 유린당하고, 이용당하는 여자들.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 삶을 누리지 못했던 많은 군인들.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수많은 인권 피해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냈습니다. 기획 전시실에는 베트남전 때 한국 군인들에게 희생당한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꼭 가져야할 시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싸워야 하고,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를 되새겨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위치 :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11길 20(성산동 39-10)

관람일: 화~일 11:00 – 18:00

입장료 일반인 기준 3000원

홈페이지: http://www.womenandwarmuseum.net/contents/main/main.asp

참 그래도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졌지. 이렇게 좋은 날이 올지 몰랐어.

이렇게 수고해 주니까 너무나 고마워.

그 당시만 해도 누가 한 사람 나서서 한마디 말해주는 사람 없고.

참 시국을 잘못 만나서 전장도 여러 번 겪으고 고생도 많이 했고, 우리가 참.

어휴 저놈들이 저희들이 스스로 반성을 해야 되는디, 저렇게 지랄을 하니 …

그놈들 웬수를 어떻게 해서 갚겠노, 빨리 해결을 잘 지어야 할텐데….

 

故암점순 할머니(1928-2018) 말씀

[브랜드] 마리몬드

마리몬드는 인권을 위해 행동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입니다. 할머니들의 삶과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생긴 브랜드이고,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 맨 앞에 소개한 일본군‘위안부’에 관련된 광고를 제작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故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나비기금’에도 기부가 되고 있습니다. 마리몬드는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꽃 패턴을 이용하여 제품을 제작하는데, 현재까지 만들어진 패턴은 11가지입니다. 개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패턴은 “용담”입니다. 故암점순 할머니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라는 꽃말을 가진 용담은 그 속에 수많은 꽃을 품고 있기에 넘어져도 더 많은 꽃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싫다고 하시면서도 찾아오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더 챙겨주려고 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마리몬드는 용담을 발견했습니다.

故암점순 할머니를 닮은 용담 꽃

할머니는 1928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14세에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갔다가 트럭에 태워졌습니다. 몽고 지역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시고 해방 후에도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시다가, 1946년이 되어서야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1993년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하시고 수원에서 여러 활동을 하시다가 2018년 3월,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생명과 회복의 씨앗, 아몬드 나무

꽃을 닮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19년 F/W에는 故강덕경 할머니의 들국화 패턴이 꿋꿋이 희망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는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할머니들의 뜻에 따라 마리몬드는 아동 인권에도 관심을 둡니다.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을 위한 메시지를 담은 아몬드 나무. 많은 인권 피해자들을 알리고, 그들의 삶이 평화를 되찾도록, 생명과 회복을 꿈꾸는 마리몬드의 비전이 더 넓게 퍼져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동료들을 꼭 구하고 싶다.

 

故김복동 할머니(1926-2019)

[게임] 더 웬즈데이 (펀딩중) 

더 웬즈데이는 주인공 ‘순이’가 되어 일본군의 전쟁범죄와 관련된 단서를 수집해 친구들을 구하는 3D 횡스크롤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총 다섯 번의 타임리프를 통해 1945년과 1992년을 오가며 진실을 밝혀냅니다. 일본군이 은폐한 진실들이 밝혀지면 1992년 현재의 모습도 변화하게 됩니다. 겜브릿지는 28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가지시는 할머님들을 보며 어떤 방식으로든 돕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게임 회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故김복동 할머니의 말씀에서 착안해 이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게임의 제목은 “The Wednesday” 수요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의문을 먼저 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중요한 사안을 왜 게임으로 해야 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던지 겜브릿지는 Q&A 프로덕션 노트를 공개했습니다. 저 또한 게임으로 체험하다 보면 자칫 유희적인 측면이 강조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이 노트를 읽다보니 나치의 인체실험 프로젝트, 대만의 테러사건 등의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게임들이 출시된 적이 있고, 사건을 알리는데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의구심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테니 Q&A 노트를 잠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Q. 왜 게임이어야 할까?

A. 영화/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영상물의 경우 이야기 자체가 주된 목적으로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도 상영이 됩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은 가능하지만 행동이입은 할 수 없습니다. 반면, 게임은 플레이 과정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감정이입과 행동이입이 둘 다 가능하기 때문에 수용자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Q. 아픈 역사가 ‘놀이’로 소비될 수도 있지 않을까?

A. 우려하시는 지점을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담아냈습니다. 첫째, 수용소 안 피해 사실을 잔인하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피하고, 대화/지문을 통한 텍스트로 구현했습니다. 둘째, 게임 내의 단서들은 난징대학살/ 731부대 민간인 생체 실험 등의 실제 사례로 구성되어 있어 플레이어가 자연스러운 학습을 유도합니다. 또 다양한 학술논문과 신문기사, 피해자들의 증언집, 영상 자료 등을 참조해 고증을 하였고, 게임을 통해 피해자분들에게 2차 피해가 없도록 정의기억연대와도 협업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단순히 오락적 도구로서의 게임이 아니고,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문화 콘텐츠로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더 웬즈데이는 텀블벅 펀딩에서 목표 금액의 125%를 달성하여 출시가 확정되었습니다. (2020년 2월 6일 기준) 故김학순 할머니께서 최초 증언을 하셔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된 8월 14일에 맞춰서 발매를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하지만 200%, 300% 달성 시 더 많은 나라의 언어로 제작하여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리워드도 준비되어 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관심이 있다면 펀딩에 참여해보는 건 어떨까요?

겜브릿지 홈페이지: https://www.gambridzy.com/33

더 웬즈데이 텀블벅 펀딩: https://tumblbug.com/wednesday

사실 이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故이용녀 할머니, 故김순덕 할머니, 故박두리 할머니, 故박옥련 할머니, 故손판임 할머니, 故강덕경 할머니 등의 그림 수업을 담당했던 이경신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 <못다 핀 꽃> 등. 하지만 몇 가지의 이야기를 더 소개한들 일본군‘위안부’의 참혹함은 다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적으로 다듬어지고, 쪼개진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지요. 하지만 이 간접적인 접촉으로도 충분히 분노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나라로 인해 인권과 인생이 통째로 산산조각난 사람들이 바로 내 곁에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할머니들은 쉽게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고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할머니들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다가 다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 이 끔찍한 일을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던 삶은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지옥이었겠지요. 그 상황에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던 할머니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는지.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여봅니다.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은 분노에 머물지 않고 평화를 꿈꾸십니다. 다른 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하여 모금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땅에 자라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본인들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며, 이 끔찍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달라며 간절히 소리치고 계십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린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나비가 되어 앉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할머니들의 삶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머니들이 정당한 사과와 배상을 받으시고, 더 이상 수요일에 만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글  에디터 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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