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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세상을 보다.

기술의 발전이 참으로 기꺼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약자를 위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활용될 때 입니다. 주접일 지도 모르겠지만, 과거에 손떨림방지 스마트 숟가락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기술의 발전이 벅차고 감사한 일입니다. 대체로, 약자를 위한 기술들은 돈이 되는 일이 아닌지라, 충분히 개발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용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개발되고도 그 보급률이 적기도 하죠. 

흔히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버스도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이미 시중에 나와있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 편입니다. 최근, 미세먼지 절감과 교통약자를 위한 친환경저상버스를 위한 예산을 투입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환경에 관한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에 찬사가 쏟아지는 와중에, 그 이전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에 대한 날선 반응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이지만 대중이 아닌 세상의 약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취향껏 4호의 주제 ‘인권’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권리가 기술을 통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문자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문자의 역사는 길지만, 문자가 대중에게 퍼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5세기경, 세계사적으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조선에는 한글 창제 및 배포가 이뤄지며 문자권력의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이던 문자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것으로 변모함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의 발판이 되며 중세에서 근대로의 변화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문자를 갖는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2020년 현재에도 문자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있으나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 중 하나는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물론,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전부 다 전맹(아예 보이지 않음)도 아니고 그 상태에 따라 확대경을 통해 문자 언어를 습득하기도 합니다.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이전에 문자를 배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체로 시력 저하가 이뤄지면서 이전 문자언어를 사용할 수 없어 특수 문자인 점자를 배워야 하죠. 문득 궁금해 집니다. 최근 5세기 동안, 수많은 지구인들이 문자를 습득했는데 그 역사 속에 시각 장애인도 함께 했을까요?

시각장애인에게도 글을. 

1443년 한글이 의도적으로 창제되었다면, 의도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특수문자인 점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1821년, 현대 점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야간 문자를 접하고 이를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로 사용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됩니다. 전쟁터에서 사용되던 암호문을 더 간략하고 체계적으로 개편하여 6점식 점차 체계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문자 체계인 점자를 braille(브라유)라 일컬었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선교사를 통해 점자가 들어왔습니다. 1898년 미국인 선교사인 로제타 셔우드 홀에 의해 평양 점자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녀는 4점식 점자 체계인 뉴욕 포인트 점자를 기초로 한글 점자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 널리 사용되지 않았지만 ‘훈맹정음’의 창제 이전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훈맹정음’은 당시 일본의 통치를 받으며 일본점자로만 교육을 해야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당시 맹아부 교사였던 송암 박두성에 의해 창제되었습니다. 1920년부터 연구를 시작하며,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발표하였고, 당시 조선총독부에 “모든 장애에서 이들을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글을 가르쳐 정서를 순화시키는 길 밖에 없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훈맹정음의 교육을 승인 받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후에 한글 정비가 이뤄지듯, 점자도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한글 외에도 과학과 수학, 음악 분야의 점자들을 들여오며 보안하였습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점자는 정비가 필요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컴퓨터 점자 관련해서 개발해야하며, 그 방식에 대해서도 논의해야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나면, 알다시피 언어는 가변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고 기존의 언어가 사라지며, 법칙이 변화하는 유기적인 존재니까요. 점자도 다를 바 없이, 하나의 언어로써 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의 존재여부를 따지자면, 특수 언어는 그 역사가 엄청나게 짧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자 수도 현저히 적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국어라 불리는 문자의 발전은 계속 이뤄졌지만, 그 격차는 여전히 넓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수능은 필수적입니다. 그건 시각 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일반 수험생보다 과목 당 1.7배의 시간이 주어지며, 점자문제지와 음성지원 컴퓨터가 제공되어 헤드셋을 통해 지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2019년 수능을 치룬 한 시각장애인은 13시간 3분에 걸쳐 총 271장의 시험지를 풀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똑같은 시험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지 말이죠. 보는 문화가 점점 확대되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그와 비례하게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기술을 그리고 접근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시대를 함께하다. 

그러한 점에서 빠르게 디지털 사회로 변하고 있는 현재는 참으로 편리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변화는 아닙니다. 디지털 접근성이 낮은 디지털 소외계층을 여러분들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할머니가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많은 영어들과 사용법을 도통 알 수 없는 디지털의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멀기만 한 것입니다.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시선은 장노년층에게만 현재 그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노년층과 함께 4대 정보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장애인과 저소득층, 농어민이 있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이중고를 겪기도 합니다. 디지털 정보 접근성과 디지털정보활용능력의 차이는 분명한 차별로 이어질 것입니다. 같은 시대, 같은 곳에서의 격차를 줄여내고 더불어 살아나가야 합니다. 대중을 위한다는 발전에 소외되는 자들이 없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들 또한 스마트폰을 하고, 페이스북을 한다는 사실에 놀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을 올리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공유를 하기도 하죠. 그리고 컴퓨터도 합니다. 바로 한소네 컴퓨터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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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한소네 컴퓨터를 보고, ‘키보드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면은 어딨고, 본체는 어디있는 거지?’-하며, 말그대로 비장애인의 무지함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화면은 그다지 큰 쓸모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컴퓨터 상단에 작게 텍스트가 표시되는 용도로만 존재합니다. 또한, 저도 노트북을 들고다니면서 본체를 언급한 건 정말 바보같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화성인도 아니고, 왜 저랑 완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여겼는지 조금 부끄럽습니다. ‘컴퓨터’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비롯한 한글 프로그램들과 사용자가 직접 프로그램들을 다운받아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제한되어있긴 하지만, 게임들도 가능합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밑의 점자들을 쭉쭉 읽는다는데, 점자 배우기가 쉬울까요?

보다, 만지다, 쓰다.

대체로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놀이를 통해 학습하곤 합니다. 학습 기구들이 참 많고, 많이들 사용해서 당연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그 선택지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때로는 부모보다 유튜브가 좋다는 디지털네이티브들과 다르게, 최근까지도 시각장애인들에게 ‘스마트 교구’는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2015년 12월 정보 접근이 어려운 시각장애인의 점자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스마트 점자학습기 ‘탭틸로’가 등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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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틸로는 스마트 점자학습기로, 만지고 듣고 가지고 놀면서 점자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점자 블록 핀을 위아래로 누르며 점자와 학습자가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제품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먼저 판매가 되었으나, 한국의 사회적 기업에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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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점자보급률은 약 10%로, 시각장애인들은 언어를 가지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맹률이 높은 나라의 경우에는 특수문자인 점자의 보급률이 훨씬 낮을테고, 또한 장애인 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혹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모르는 가정들도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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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어플을 통해 글자나 단어를 선택하면, 탭틸로에 점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지도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음성 안내는 물론이거나와 게임과 음악 점자 프로그램이 있어 계이름도 익히며 노래를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장점은 탭틸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장애인을 ‘자립’과 ‘주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없게끔 만들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여건이 된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 많습니다. 

다들 잘 살아가고 있나요?

대중이지만 대중이 아닌 세상의 약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혐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존을 택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은 다른 사회 모델을 보지 않으면 사실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접해보지 않았고, 관심가지지 않았으며, 논의된 적 없으니 말이죠. 저는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살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총 2명의 시각장애인만을 만나보았습니다. 저에게 버스가 오는 지 묻고, 지금 온 버스가 맞는 지 기다려주고 계단까지 올려보낸 적도 2번이지요. 버스는 너무 빠르고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는 가파릅니다. 시간을 맞춰야하는 버스기사들은 빠르게 출발을 하고, 줄지어 오는 버스에 물어보지도 못하고 차량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십육년의 삶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한국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은 딱 2명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살면서 보낸 한국에서의 장애인보다도, 여행을 다니며 만난 장애인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지곤 합니다. 차별은 구역을 구분짓습니다. 그들의 생활 반경을 좁혀놓고 거기서만 살게 만들죠.

유럽 여행을 갔을 때에, 길을 묻고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알고보니 같은 관광객 무리인데다가 시각장애인들이었던 걸 알고 이 세상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관광지에 수많은 개인단위 혹은 소규모 단위의 약자들이 분포되어 있는 모습들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저 자신이 또 이상했습니다.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들이죠. 세계적인 관광지들 중에서도 배리어프리가 잘 되어 있는 곳을 보면, 여기저기 휠체어와 지팡이와 시각장애인 혹은 지적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 또한, 그러한 공간이 점점 늘어나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길고양이를 동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장애인들의 자립을 도우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마땅히 말하고 쓰기 위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필요합니다. 결코 한 그룹만이 더 나은 진전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장애인이 마땅히 제공받아야 할 것이 문자만은 아닐 것입니다. 비장애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들과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받아 동일한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할테니까요. 다양성이 화두가 되는 현재, 소수와 다수 구분없이 뭉쳐살 수 있는 공간들이 더욱 늘어나길 빌며, 소수를 위한 기술 개발에 힘쓰는 21세기 영웅들에게 다시금 감사하며.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글 에디터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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