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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

기록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당신은 `취향`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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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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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기록을 하기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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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록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게 가장 큰 이유이지 않았나 싶다. 항상 무언가 읽고 쓰는 게 과제여서 기록하는 게 습관이 됐다. 나중에 보니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지가 글에 확실히 드러나더라. 졸업을 앞두고 보니 누가 시키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릴까봐, 아쉬워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이 아쉬웠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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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니는 4년 동안 과제에 국한된 기록에 짜증나기도 했지만, 무언가 남는다는 사실 자체는 좋았다. 글 실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과거에 대한 정보를 잊지 않고 붙잡고 있을 수도 있고. 중학교 때, 당신이 추천해준 영화들이 꽤 많았던 거 기억하나? 몇 개의 영화를 추천해주고는 꼭 봐달라고 애걸복걸 하는데 안 볼 수가 있나. 그래서 본 게 꽤 됐는데, 글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기억이 나지 않더라.

맞다. 나도 처음 본 것마냥 새롭던 영화가 많다. 분명 본 영화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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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어, 나 이거 옛날에 봤는데?` 싶어서 줄거리를 보는데, 내가 진짜 본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영화도 가볍게 생각하면 그냥 영상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2시간이 넘는 영상에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지 않겠나. 그런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잊지 말아야겠다 싶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문한 음료와 스콘이 나왔고, 

인터뷰이인 혜수는 이것부터 찍고 다시 이어가자고 말하며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는 다시 하는 말,

"이것도 기록인 거 알지?"

어떤 걸 기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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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일상과 책, 영화, 드라마 같이 모든 콘텐츠를 기록하려 한다. 좀 더 디테일하게 기록해보고자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블로그라는 매체와 친해지는 단계라 낯선 상태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몇 장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짧게 쓰기만 하면 되는데 블로그는 그렇게 하면 가독성이 떨어진다. 블로그에 가장 적합한 사진과 글 배치가 있을 텐데,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월간 수헤이>라는 개인일상 콘텐츠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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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해동안 휴학을 했었다. 1년을 통째로 맘껏 하고 싶은 걸 해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뭔가 적어두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쓸 것 같았다. 뭘 했는지 까먹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올해 한 번만 일기를 써보자.`해서 쓰게 됐다. 그리고 연말 즈음 써놓았던 것들을 읽어보는데 너무 재밌고 뜻 깊더라. 인스타그램에 조금씩 올리다가 조금 더 디테일하게, 월말정산처럼 써보면 어떨까 싶어 <월간 수헤이> 컨텐츠를 만들게 되었다. 

인생에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분명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나가면서 까먹은 것도 많고, 나쁘게 또는 미화시키는 것도 너무 많다. 그러니 짧게라도 적어둔다면 잊지 않고 돌이켜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이유에서 시작한 것 같다.

기록에 이미지를 자주 이용하던데,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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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시각적으로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요소를 더 선호하고 있다. 뉴스를 읽을 때에도 헤드라인 보고, 이미지 보고, 댓글 창으로 직행하지 않나. 그래서 카드 뉴스가 유행하게 된 것 같다. 그만큼 이미지라는 건 현재 중요한 콘텐츠 요소라고 생각한다. 기록에 사진이 있으면 생동감이 더 크고, 단순한 글보다 임팩트도 더 크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나 덧붙이자면, ‘네이버 클라우드’를 오랜만에 열었는데, 10대 때 사진들이 아직도 클라우드에 남아있더라. `아, 내가 예전에 이렇게 생겼었구나.` 싶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있을까 싶다. 우리들 인생에 딱 한 번뿐인 순간이 있을 거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날들의 기록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다는 걸 살면서 깨달았다.

기록하기 좋은 플랫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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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인스타그램이 기록하기에 가장 편하다. 내 또래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업로드를 할 때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위에 말했다시피 사진 몇 장 고르고 줄거리와 느낀 점 정도만 올리면 꽉 차 보인다. 다만 글 가독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더라. 반면 블로그는 레이아웃이 자유로워 좋은데, 글과 이미지의 양이 많아야만 가득 차 보인다. 또 바이럴 마케팅의 장이라 아무리 써도 메인에 뜨는 건 쉽지 않다. 해서 주로 작품 리뷰는 블로그, 일상은 인스타그램에 기록한다. 기록의 목적에 따라 플랫폼의 선택이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껏 올렸던 기록들 대부분은 취향에 적합한 것들만 올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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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들만 올리지는 않는다. 사실 선별할 만큼 많은 양을 읽지 않아서 접한 것들 대부분 기록과 이어진다.

그러니까 모든 작품들을 선별 없이 접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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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선별이 없지는 않다. 1차적 선별이 있기는 하다. 좋아하는 장르를 주로 선택한다. 도서는 소설이나 인문학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작가가 새 책을 냈을 때 믿고 읽는다. 학부 때 현대 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현대 소설을 많이 접했는데, 그때 별로였던 작가들은 거르는 편이다. 책 기록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들을 팔로우해놨다. 출판사 계정에 업로드된 책 속 문장들을 먼저 읽고, '이 문장 되게 좋은데 전문으로 느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구입하여 읽는다. 과학도서는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에세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좋아하는 장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트레일러를 미리 본 후에 '내 취향일 것 같다' 싶으면 본다. 다만 타인의 리뷰나 광고성 추천글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타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리뷰나 상업적 의도가 다분한 추천글을 읽다 보면 내 취향을 망각하고 그에 현혹될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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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시킨다고 하니 요즘 기록들은

대부분 광고 같단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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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진정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블로그 글을 읽다보면 광고 같고, 인스타그램 글을 읽다보면 협찬 같고. 광고 아닌 척 하는 글들도 꽤 많다. 기록과 광고가 혼동된다. 나를 위해 뻗어나간 기록이 진정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취향이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도 광고의 현혹을 피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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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웹진 <취향껏>도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 모두 `취향`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그런데 정말 진짜로 내 취향인 건 몇 개나 있을까 궁금한 적 없나? 우리에게 많이 노출된 것들을 취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카페를 예로 들자면, 요즘 사람들이 워낙 카페를 많이 가니까 그들보다 더 예쁜 곳을 찾아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 하려는, 보여 주기식의 취향이 아니었을까? 인스타나 블로그가 사람들의 취향을 부추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전과 달리 취향이 `소비`에 국한되고 있다.

신조어도 대부분 소비와 관련된 게 많지 않나, `소확행`같은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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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렇고, 미술이나 영화 같이 문화 취향보다는 옷, 화장품, 음식 같이 소비 부분에 취향이란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나도 20대에 속하니 현재 트렌드를 쫓으면서도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니 더 기록을 해야 한다. 경험한 걸 토대로 쓰다보면 분명 본인 취향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런 주제의 책은 나에게 맞지 않네.`, `이 음식은 내 입맛에 맞지 않네.` 같이 휩쓸리지 말고 본인에 대해 알아가는 데에 기록만한 게 없다.

당신 덕에 나도 내 취향을 의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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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있지 않나? 한창 재미있다고 난리였던 <HER> 이나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이 두 영화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20대들이 추구하는 감성의 영화이기도 했고, 또래들의 호평이 많아서 봐야할 것 같은 압박감에 봤는데 기록할 때 할 말이 없더라. 딱히 좋았던 장면도 없고 말이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즐거움을 쫓을 때마다 회의감이 드는 것 같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기록을 하는 건 본인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을 위해 이것까지 해봤다 싶은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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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에도 솔직히 음식사진 찍을 때 되게 예쁘게 나올 것 같은 구도나 자리가 있다. 그래서 앉아계시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잔디밭에 누워서 인생사진을 찍으려고 한 적도 있다. 글은 끊임없이 수정한다. 업로드 할 때에는 잘 모르겠는데 꼭 올리고 나서 `이거, 문맥 되게 이상하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수정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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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기록했던 것 중 가장 좋았던 컨텐츠는 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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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우리> 라는 영화. 영화 사진, 제작 일지까지 중국에서 직구로 구매했다. 너무 소장하고 싶었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 영화 주인공이었던 배우 ‘주동우’가 주연이라는 사실에 줄거리도 찾아보지 않고 봤다. 사실 공감할 여지는 없다. 자취를 해본 적도 없고, 현실적인 이유로 연인과 헤어진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소파’라는 요소 하나로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를 대변한 연출이 너무 좋았다. 또한 스토리도 내 또래 중 누군가는 호되게 겪었을 것 같은 사랑이다. 그래서 되게 많이 울었다. 영화와 관련해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모두 리뷰글을 남겼다.

향후 어떤 기록을 해나가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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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중국드라마에 푹 빠져있는데 제대로 기록을 해볼 예정이다. 사실 ‘중국 드라마’라고 하면 <황제의 딸>이나 <의천도룡기> 같은 무협사극을 주로 떠올리기 쉽다. 해서 마이너들의 취향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콘텐츠가 많다. 내 취향을 저격한 콘텐츠들이 많아서 매일 보고 있다. 예전에는 포스터 몇 장에 간략한 줄거리와 느낀 점만 올렸는데, 이제는 캡처도 해보고 글도 늘려볼까 한다. 조금 더 딴딴한 콘텐츠로 탈바꿈한다고나 할까. 단순히 추천 글이 아니라 `내가 봤는데, 내가 읽었는데 이런 점이 정말 좋았다.` 같이 진심이 담긴 기록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이 이혜수 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녀와 기록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많은 이야기에 공감했으며, 조금 더 나은 기록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독자 분들도 오늘, 이 글을 읽은 후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일기를 써볼 것을 권한다. 꾹꾹 눌러담은 마음이 길이길이 남아 타인에게도, 훗날 자신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는다.

글  에디터 ㅎ

:-)

취향껏 매거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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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wihyang.kk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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