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집
문장을 수집한다는 것
종종 책을 읽을 때 활자가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나는 손으로 자음과 모음을 손으로 눌러가며 그 문장을 읽어본다. 그 문장이 오롯이 읽히면 나는 글씨를 쓰고, 글을 쓴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문장을 수집하는 나의 버릇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장’은 꼭 책의 구절을 뜻하는 건 아니다. 뉴스에서의 인터뷰, 오늘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말, 어떤 드라마의 대사, 그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나는 어떤 말이 마음에 콕 끼일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팍 찍힐 때가 있다. 마치 내가 다트판이라도 된 것처럼 정중앙에. 그런 강렬함을 느낄 때에 글씨를 쓰고 글을 쓴다.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활자로 묶어 놓는 일. 그게 일종의 나의 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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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해서 글을 쓰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써야 하기 때문에’ 쓰는 편이다. 튀어나온 활자들은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있으면 꼭 기록을 해야만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는 문장 수집에 열을 올렸을까? 언제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걸까? 원래도 책 읽는 걸 좋아했지만, 이렇게까지 예민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에게서 나를 배운다는 것
어릴 때부터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책상에 낙서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꾸미는 등 손으로 뭔가 그려나가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그런 내가 캘리그라피를 하게 된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캘리그라피를 할 때, 어떤 문장을 쓰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 이건 아마 주선쌤(캘리그라피 스승님)의 영향이 큰 것 같은데, 예쁜 글씨를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서 그런 것 같다. 어떤 문장이냐에 따라 펜이 달라지고, 색깔이 변화하고, 필체가 바뀌었다. 그래서 어떤 문장을 어떻게 쓰고 싶은가를 늘 고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던 전과 달리 ‘문장의 결’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어떤 마음을 표현하는 작가의 방식, 어떤 장면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들. 세세한 마음들을 읽을 때마다 인물을 그려내는 작가의 다정함을 발견했고, 책 읽는 게 더 좋아졌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활자가 튀어나온다는 느낌.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는 문장들. 나는 한참을 멈춰서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은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 이 문장에 어울리는 펜이, 색깔이, 필체가 떠오른다. 그러면 나는 그때야 그 문장을 어떤 모양으로 담아냈다.
그런 글씨들을 SNS에 게시할 때는 자연스럽게 내 생각이 덧붙여졌다. 문장을 쓰면서 떠올린 느낌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글’을 쓰는 시간이 늘었다. 어느샌가 마음에 와닿은 문장보다, 그 문장을 보고 떠올린 내 글을 글씨로 담아내기 시작했 다. 날아가는 것들을 잡기에 급급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문장들을 소화해서 내 것으로 바꾸게 된 거다.
문장을 수집하는 것보다 어려운 건 소화하는 일이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 더 나와 가까운 문장들, 나와 결이 맞는 문장들을 찾게 됐다. 찾고 보니 그런 것들은 힘든 내 마음을 읽어 낸 듯한 글이었다. ‘행복하다’는 건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감정이지만 ‘힘들다’와 같은 감정들은 내게 조금 어려운 감정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고, 표현해도 되는지 몰랐고,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한데 나만 이렇게 우울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문장들, 슬프고 외로운 마음을 풀어준 글들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내가 힘들었구나, 우울했구나, 가라앉았구나. 그리고 다들 나처럼 이런 감정을 겪고 이겨내면서 사는 구나.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 감정들을 문장들로 배울 때마다 마음이 한 뼘씩 자랐다. 마치 키가 크는 것처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어느 날에는 아주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서 집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 글씨를 쓰고 싶다. 그런 날들이, 문장들이 늘어갈 때마다 나는 내가 무척 좋아졌다.
나를 사랑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는 것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생각보다 잘 모르고 산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크게 본다. 그래서 한없이 많은 좋은 점들을 놓치는 거다. 내가 보기에는 대단한 사람들인데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해결책은 단 하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여야만 하고 나를 사랑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는 것.
나는 문장들을 모으면서 나에 대해 배웠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무척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해하고, 동시에 내가 어떤 좋은 점을 가졌는지 알게 됐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 어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내게 수집되어 문장으로 남을까 기대를 하며 듣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대화가 설레고, 진중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기쁘다.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사람, 그게 나의 강점이다. 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게 내 삶의 큰 버팀목이 됐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방법이 꼭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다. 문득 힘들다면, 나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면, 삶이 고통스럽다면 당신도 책을 읽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필사해보는 건 어떨까.
문장을 수집한다는 것,
누군가에게서 나를 배운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는 것.
생각보다 아주 멋진 일이다.

글 에디터 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