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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하,

결핍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당신은 `취향`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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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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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 대신 필명을 써도 되나요? 인터뷰를 다섯 호나 작업했지만 이런 질문은 처음이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당신은 취향을 ‘다름’이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른 색깔의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모두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지만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당신의 취향은 어쩌면, 결핍에서부터 온 것이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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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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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을 갈망하는 사람. 자존감이 높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빠른 년생이라 그런지 내 생일이 언제인지, 몇 살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헷갈린다.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면 되잖아” 하면서 정답을 쉽게 찾아주는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숨어서 상황을 관찰하며 눈치도 많이 보는 편이지만, 티는 잘 안 난다. 

남에게 집중 받는 것이 싫어서 필명을 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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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집중 받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필명을 썼다. 인터뷰도 그렇고, 개인 작업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필명이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다.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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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하(道下). ‘길 도’에 ‘아래 하’를 쓴다. 처음에는 이 이름의 발음이 좋았다. 억양이나 흐르는 느낌이 좋아서 필명을 짓고, 나중에 한자를 붙여 뜻을 정했다. 프레임이나 규격화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바깥으로 나가는, 아래로 빠진다는 뜻이다. 약간 길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지었다. 

언제부터 필명을 쓰기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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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사용한지는 얼마 안 됐다. 2018년 11월쯤? 앞서 이야기했지만 완벽함을 갈망하는 경향이 크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할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50을 줘야 한다면 100을 주고, 마음을 담을 그릇마저 내줘버리니 내 것, 내 시간이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합을 맞추고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서 프로 젝트를 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필명을 썼다. 

인터뷰도 필명으로 공개해달라고 했는데,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본인 자신과 작가 ‘김도하’는 무슨 차이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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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부르는 이름, 실명으로 불릴 때는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떤 껍데기에 얽매인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필명을 쓸 때는 시선이 분산되는 기분이 든다. ‘나’라는 사람과 ‘김도하’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김도하’라는 이름을 쓸 때는 스스로도 제한을 두지 않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보통 어떤 작업을 주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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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흙을 사용한 입체작업을 주로 하고 사진작업과 이미지작업을 한다. 그 이외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거나 하는 편이다. 예술에 있어서 사람들은, 심혈을 기울인 작품만을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그런 것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일상생활 중 사진을 ‘스쳐지나가며’ 찍을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완벽하지 않은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데, 예를 들어줄 수 있는 사진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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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은단을 좋아하신다. 그래서 집에 항상 은단이 비치되어 있는데 어느 날은 실수로 그걸 쏟았다. 바닥에 팍 흩어지는 은단을 보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까 의도하지 않았는데 발견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거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길을 가다가 죽은 새를 발견했다. 과거에는 어떤 ‘죽음’을 볼 때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피사체로 바라보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상주한다. 그것을 자각하고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단이 흩어진 모양 ,  김도하 作

갈라진 틈이 인상깊다 , 김도하 作

사진이야말로 취향을 드러내는 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을 자존감이 낮고 완벽함을 갈망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작가 ‘김도하’를 소개할 때는 다른 사람인양 보였다. 심지어 그의 작품은 완벽하지 않으려 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니. 본인과 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완벽히 분리해낸 모습이었다. 도예과를 전공하고 있지만, 사진도 취미 이상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어떤 모양의 작가가 될까, 무척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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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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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의 비교에 가깝다. 내가 관찰하는 모든 것들은 비교 대상이 되고 그보다 나은 것, 완전한 것을 꿈꾼다. 남들이 보기에도 저건 완벽해! 하는 게 아니고 나 스스로 비교하고 분석했을 때에 만족한 것을 ‘완벽한 상태’라고 본다. 개인적인 목표지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런데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한다. 무너져 내리는 것, 흘러내리는 것, 혹은 과거에 지나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 

완벽을 꿈꾸면서도,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한다니, 조금 아이러니하다.

아! 아이러니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들었다. 본인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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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아이러니라는 말을 자주 쓴다. ‘아이러니’라는 단어가 주는 모순, 반전과 같은 장치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데, 결핍된 부분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족한 것들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결핍을 채워서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동시에 내 결핍을 응시하는 시선이 공존한다. 맞다. 아이러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핍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반드시 채우려고 하는 사람은 보기 드문 것 같다. 결핍이라는 것은 꼭 채워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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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이야기하는 것을 잘 못했다. 더 정확히는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못했다.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셨는데 손님들이 나이를 물으면, 스스로 대답을 했던 기억이 없다. 부모님이 옆에서 나이를 이야기를 해주면 그 ‘표현’을 따라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 정도로 표현하는 걸 못 했던 것 같다. 그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표현할 수단이 간절했다. 중학교 때는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수단이 패션이었고 그에 대한 관심이었다. 지금은 음악, 글, 그림, 사진, 공예 같은 것들로 채우고 있다. 결국 결핍을 느끼고, 이를 채우고자 할 때마다 수단을 발견한다는 말이다. 결핍을 채우는 건,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일종의 원동력이다. 

대답을 들어보니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혹시 사진 외에도 취미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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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에 와서 잡일하기가 취미다. 약속시간보다 한 두 시간 정도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 낙서하는 것도 좋아한다. 작업의 방향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낙서는 그냥 끄적이는 것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아이디어가 되고 작품이 된다. 그래서 좋아한다. 

특기가 취미고, 취미가 특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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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맞는 말인 것 같다.

햇살 아래 고양이가 무척 귀엽다 , 김도하 作

결핍에서 원동력을 찾아내고, 스스로는 완벽하고자 엄격하게 대하면서 완벽하지 않은 것들은 사랑하는 삶. 어쩐지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이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나른하고 좋았다. ‘다름’을 이야기하는 그의 취향이 더 궁금해졌다. 취미를 물으니 낙서라고 하면서 완벽하지 않아서 좋아요, 라고 말하는 그는 참 일관성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오롯이 한 곳을 보며 나아가는 삶. 그런 취미마저도 참 독특한 이유가 따라붙는다. 

당신의 취향이 더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시나 책을 소개해 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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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좋아한다. 그 분의 다른 시집을 읽어보게 된 계기가 된 시다. 문장이 주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슬픔이 가득한데도 없는 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완벽한 문장들 뒤에서 비집고 흘러나오는 슬픔들은 글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나는 덤덤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 역시도 슬픔이 없어 보이지만 가득한 사람이라는 걸. 시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통로라는 걸 알게 된 작품이었다. 직관 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 그런 것. 

당신이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좀 특이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안정되고 싶어서 불교를 믿는다고 했는데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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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안정되고 싶어 한다. 흔들리지 않는 척 하지만 사실은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사실은 ‘이렇게 했어야 했나, 저렇게 했어야 했나.’ 속으로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 절이다. 나 혼자 내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곳. 속세에서 갖춰야 했던 것들이 그곳에서는 없어진다. 정말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 또, 불교 미술도 좋아한다. 그만이 가진 아름다움이 있고, 이미지와 분위기와 의미가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서. 그림 속 신들이 가진 차분하고 인자한 표정은 평온하면서도 절제되어 보인다. 

종교는 없지만 한 번쯤 절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 드디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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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행복하지 마시고 평안하세요! 무언가를 쫓지 말고 평안! 완벽하려는 마음을, 방향성을 가지지 말고 ‘나’라는 사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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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까지 독특한 인사를 남겼다. 그의 취향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할 수 없었던 시절을 위하여, 온갖 표현의 수단을 찾았다. 패션에 대한 애정으로, 제품에 대한 기호로,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그밖에 어떤 무엇으로. 그에게 결핍이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원동력이었다.

그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그가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본인에게 부족한 점은 인정하고 다른 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는 태도, 다름을 인정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인상 깊다. 행복이 아니라, 평온을 이야기하는 그의 마지막 말은 어쩌면 그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건 아니었을까? 즐거운 인터뷰 끝에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부터는 행복 말고, 평온해볼까.
 

글  에디터 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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